요즘 나의 화두는 '욕망'이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아침 저녁으로 생각한다. 한 때 나는, 아니 지금도 매번 두가지 생각의 꼭지점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변덕스럽다. 일년 전만하더라도 동지섣달의 활엽수처럼 모든 욕망을 떼어버리고 식물처럼 살고 싶었다. 빨리 늙어서 지방 소도시(혹은 필리핀의 한 어촌정도?)로 내려가 빈둥거리며 살고 싶었다. 그러던 내가 걸지 편집장을 맡게 된 것이다.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속도와 그들의 에너지, 감정의 편린들을 내가 다 담아낼 수 있을까. 며칠간의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에서 수락했다(그래 난... 이기적인 편이다).
몇달이 지난 요즈음. 욕망에 대해 생각해볼 정도로 나는 많이 변했다. 독자와 에디터... 그리고 엘르걸의 충만한 에너지가 나를 변하게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긍정적인(어떤 점에서는 괴로운,, 욕망이 많으면 번뇌도 많은법이니) 변화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탄듯 어지럽기까지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 몫의 욕망이란 것이 남아있기는 한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새해가 되어 서른 일곱이 되었고 아홉살난 딸아이를 둔 워킹 맘이다. 이쯤되면 포기할 것이 더 많아지는 스펙 아닌가. 나 또한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욕망이란 것은 세월과 함께 퇴색되어지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싶다.
젊은 시절 내 욕망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백가지도 넘는다. 날 것처럼 살고 싶었고 누군가의 글처럼 무소의 뿔처럼 가고 싶었다. 그 바람을 이젠 내 아이를 보면서 꾼다. 내 딸이 온 몸에 생채기를 가득 내면서도 퍼득퍼득 거리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세상 어느 것에도 미련두지 않고 정진하면서 스스로 발광하면서 말이다.
최근의 심정변화때문일까. 의식적으로 선동질하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크리스마스와 연초의 긴 연휴동안 책장의 책을 다시 끄집어냈다가 발칵 뒤집기를 여러번 했다.
그 가운데 한권이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였다.
젊은 날에는 미문으로 가득찬 소설들을 사랑했다. 관념적인 이론서들도 헛된 욕심으로 읽어냈다. 그러나 멋부리지 않고 막힘없이 내려간 문장들이 이제는 더 끌린다. <..미친년..>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페미니스트라고하기에는 너무나도 소비적이고 개인주의인지라 평생을 두고 한번도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나 역시 페미니스트를 벤치마킹하고 있었다는 혐의가 든다.
인터뷰 형식으로 쉽게 쓰여졌으나 이 책에 소개된 아홉명의 미친년들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러나 누구의 삶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 딸아 너는 착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일갈한 캐나다의 예술가 윤진미 씨가 그렇다. 인생에 쓸데없는 건 다 잘라버리라고 선동하는 유니언신학 대학의 현경 스님 말씀도 그렇다.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그녀들의 삶은 기구하다. 아이들을 버려두고 비구니로 입적했으니 나로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미칠줄 알아야 한다는 그녀들의 지적만큼은 깊이 공감한다. 과감하게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책을 읽다보면 그런 단어가 술술 나올 정도로 굉장히 선동적인 내용이다. 그렇기에 엘르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고민이 많을터이고 싸늘하게 이 겨울을 통과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름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명함이 당신을 말해주는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욕망에 좀 더 충실해질테다.
몇달이 지난 요즈음. 욕망에 대해 생각해볼 정도로 나는 많이 변했다. 독자와 에디터... 그리고 엘르걸의 충만한 에너지가 나를 변하게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긍정적인(어떤 점에서는 괴로운,, 욕망이 많으면 번뇌도 많은법이니) 변화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탄듯 어지럽기까지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 몫의 욕망이란 것이 남아있기는 한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새해가 되어 서른 일곱이 되었고 아홉살난 딸아이를 둔 워킹 맘이다. 이쯤되면 포기할 것이 더 많아지는 스펙 아닌가. 나 또한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욕망이란 것은 세월과 함께 퇴색되어지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싶다.
젊은 시절 내 욕망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백가지도 넘는다. 날 것처럼 살고 싶었고 누군가의 글처럼 무소의 뿔처럼 가고 싶었다. 그 바람을 이젠 내 아이를 보면서 꾼다. 내 딸이 온 몸에 생채기를 가득 내면서도 퍼득퍼득 거리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세상 어느 것에도 미련두지 않고 정진하면서 스스로 발광하면서 말이다.
최근의 심정변화때문일까. 의식적으로 선동질하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크리스마스와 연초의 긴 연휴동안 책장의 책을 다시 끄집어냈다가 발칵 뒤집기를 여러번 했다.
그 가운데 한권이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였다.
젊은 날에는 미문으로 가득찬 소설들을 사랑했다. 관념적인 이론서들도 헛된 욕심으로 읽어냈다. 그러나 멋부리지 않고 막힘없이 내려간 문장들이 이제는 더 끌린다. <..미친년..>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페미니스트라고하기에는 너무나도 소비적이고 개인주의인지라 평생을 두고 한번도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나 역시 페미니스트를 벤치마킹하고 있었다는 혐의가 든다.
인터뷰 형식으로 쉽게 쓰여졌으나 이 책에 소개된 아홉명의 미친년들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러나 누구의 삶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 딸아 너는 착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일갈한 캐나다의 예술가 윤진미 씨가 그렇다. 인생에 쓸데없는 건 다 잘라버리라고 선동하는 유니언신학 대학의 현경 스님 말씀도 그렇다.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그녀들의 삶은 기구하다. 아이들을 버려두고 비구니로 입적했으니 나로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미칠줄 알아야 한다는 그녀들의 지적만큼은 깊이 공감한다. 과감하게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책을 읽다보면 그런 단어가 술술 나올 정도로 굉장히 선동적인 내용이다. 그렇기에 엘르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고민이 많을터이고 싸늘하게 이 겨울을 통과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름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명함이 당신을 말해주는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욕망에 좀 더 충실해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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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먹는얼빵 2008/01/06 22:19
미래에 대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갈피를 못잡고 요즘 방황아닌 방황 중 입니다.
어쩌면 추천해 주신 책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방황에 마침표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듭니다.
내일 당장 서점에 가서 당당하게 "미친년 주세요." 그럼 저를 다들 '미친년'보듯 쳐다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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