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도 못하게 에스모드 17회 졸업작품전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처음엔 과연 내가 자격이 있을까하는 고민도 없지 않았지만 심사위원만해도 40여명이 넘는데다 점수를 매긴다기 보다는 가장 마음에 드는 다섯 작품에 도팅하는 정도라는 설명에 안도(?)하고 참석했다.
돌이켜보면 십여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매거진을 만들어 오면서 그 오랜 세월을 견디게 한 것은 밥벌이의 고단함이 아니라 패션을 포함한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그 달콤함 때문이 아니였을까. 그 중에서도 패션이야말로 나에겐 일이자 놀이요, 취미 활동인 셈이었다. 한마디로 세미 정장만은 줄창 입어야 하거나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을 고수해야하는 직업이었다면 결코 지금까지 오래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졸전 작품들을 죽 둘러본 나의 감상이라면 그 수준이 상당하다는 점. 평소 백화점에서 팔린다는 이유만으로 쓸데없이 비싸기만한데다 개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몇 몇 브랜드 옷들을 미워라하던 내게 무지하게 신선한 시간이었다는 점 등등이다. 옷을 통해서 자신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달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디테일에 관심을 두고 소재의 참신함을 곱씹으면 한벌한벌 옷을 들여다 보니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올해에는 유난히 입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여러가지 버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옷들이 눈에 많이 띄어 흥미로웠다. 아... 그런 재미있는 옷이라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즐거워질 것 같다.
내 바램이라면 이런 감수성이 강한 옷들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나봤으면 하는 것. 그래서 나이 오십이 되어도 입을 만한 옷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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