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9 01:48

그 옛날, 피구론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인 96년, <에스콰이어>의 막내 기자였던 나. 지금은 <루엘>과 <모닝캄>의 편집장으로 어엿하게 한자리 하고 계시지만 그 때만해도 마감이 시작되면 빌빌 거리기는 마찬가지였던 문모 선배와 정모 선배의 비호아래 마냥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일이 편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단지 마음이 편했다고나 할까. 마냥 회사다니는 게 좋고 책에 내 글이 박혀있는 게 신기했던 시절이었으니 야근을 해도 쌩쌩하고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던 싹싹한 후배였던 것. 글쎄, 선배들은 모르겠으나 나는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실을 서클룸 드나들듯 기쁘게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뭔 회식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뭐, 그 땐 늘상 무슨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회식을 하곤 했으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술자리를 갖다가 입사 반년차인 내가 선배들을 '헉'하게 만드는 한마디를 날렸다.
"선배, 직장 생활은 피구와 비슷한 것 같아요."
"왜?"
"함부로 공을 받아서는 안돼니까요."
그 순간 선배들은 마치 내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라도 되는양 감탄을 금치 않으며 바라 보았다.
나의 피구론은 순식간에 잡지계에 회자되었고 급기야는 CJ의 인사 당담자의 귀에 들어가 신입 사원 교육 자료에서도 언급되기도 했다는데.....

그러던 내가 세월이 흘러 지금은 편집장. 출근하면서 불현듯 다시금 그 시절 피구론이 떠올랐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피구론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래, 처음엔 공만 피하면 장땡이지만 어느 순간 한 두명씩 아웃되면서 원치 않아도 공을 받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 오기마련인 것을...... 피구론은 지금에도 유효하다.
...........................
아침 저녁으로 공을 받아내느라 팔뚝에 멍이 시커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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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rica :) 2009/01/18 17:01 address edit & del reply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기억해놓고 싶은 말씀이세요. 잘 기억해 두려고요^^